봄 SPRING


 [생각의 가치 ; 당신의 생각과 글은 소중합니다. 스팀잇은 고급 콘텐츠 생산자들과 큐레이터들에게 투명한 금전적 보상을 지원합니다. 지금 참여하세요.] 

 

생각의 가치를 보상하겠다며 등장한 이 새로운 플랫폼에 많은 이들이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기존 플랫폼에서 평생 글을 쓰며 많게는 수백만의 독자들을 보유하고 있지만 단 한 푼의 금전적 수입도 얻어보지 못한 파워블로거부터, 고래의 꿈을 꾸며 많은 자본을 투자해 코인을 구입한 투자자와 평상시에 즐겨 읽던 작가의 글을 읽기 위해 가입한 단순 유저까지, 이 새로운 플랫폼에는 다양한 주체들이 저마다의 관심과 의도를 가지고 새로운 커뮤니티를 형성해 가고 있었습니다.  S 기존의 거대 포털들은 단지 필드를 제공했다는 것만으로 막대한 이익을 독점하고 있습니다. 그 포털의 가치는 창작자들이 제공하는 콘텐츠의 양과 질, 그리고 그것을 이용하기 위해 접속하는 소비자들의 클릭수와 페이지뷰로 측정되고, 그것은 광고와 부가사업으로 연결되어 막대한 부를 빨아들입니다. 그러나 정작 포털의 가치증대에 핵심적으로 기여한 창작자와 소비자들은 아무런 대가를 얻지 못합니다. 자신의 콘텐츠를 가져다 팔고 회원을 끌어 모아놓구선 그것에 대한 대가는 파워블러거라는 딱지 하나를 붙여줄 뿐인 것입니다. 불만은 고조되고 있었으나 마땅한 대안이 없는 시절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S 그때 창작자에게 수익을 배분하겠다며 등장한 유튜브는 많은 창작자들로 하여금 영상제작자로의 전환을 유도했습니다. 수많은 창작자들이 대열에 합류했고 새로운 직업과 부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것이 적절한 배분인지는 의심스럽지만, 적어도 창작자에게 수익을 배분하려는 시도는 혁신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것을 보고 감상해주는 소비자들의 몫은 배제되어 있습니다. 구독과 조회 수를 늘려주는 대가는 무료로 콘텐츠를 감상하는 것뿐인데, 그마저도 광고를 보아주거나 구독료를 별도로 지불해야 하는 것으로 악화되고 있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으면 사라질, 가상 공간의 착취 방식으로는 좀 대범합니다. 덕분에 소비자들은 쉽게 싫증을 내고 플랫폼을 바꿔 버립니다. 그것이 유일한 권리이므로. 그럴 때마다 창작자들은 매번 다시 시작해야 하며 포털 사업자 역시 빠르게 치고빠지지 않으면 한때의 영화에 취해있다 썰물처럼 빠져나간 유저들을 바라보며 몰락해 가는 것입니다. 이런 곳에서 커뮤니티란 신기루 같은 것일 겁니다.  S 그런데 이 새롭게 등장한 블록체인/암호화폐 기반 콘텐츠 플랫폼은 창작자에게 보상을 주는 것은 물론이요, 그것을 읽고 ‘좋아요’를 누른 독자와 콘텐츠 소비자에게까지 보상을 분배해 주었습니다. 단지 콘텐츠를 감상하고 ‘좋아요’를 눌렀을 뿐인데 보상을 주다니, 이것은 혁신을 넘어 자본주의의 본질에 다가서는 혁명적인 시도였습니다. 사람들은 흥분했고 많은 창작자들이 정당한 보상을 기치로 모여들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흐름을 빠르게 읽은 투자자들 역시 이 플랫폼의 코인을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오히려 어리둥절했던 것은 소비자였습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경제시스템에 이걸 받아도 되는지 당황한 것입니다. 그러나 시스템은 이미 확고한 방향을 가지고 있었고, 그 방향에 따라 콘텐츠 소비자에게도 좋은 콘텐츠를 선별해 주는 ‘큐레이터’라는 새로운 명칭과 함께 금전적 보상이 주어졌습니다. 그러자 모두 고래의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S 이 마법의 커뮤니티는 묘한 힘을 가지고 있었는데, 금전적 보상을 전제로 하고 있어서인지 다른 온라인 커뮤니티들이 가지고 있는 막말과 악플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의 반응이 곧 평판과 연결되도록 시스템이 구성되어 있었고, 좋은 평판을 얻지 못하면 보상을 극대화할 수 없기에 사람들은 매우 친절한 페르소나로 무장한 채 서로를 존중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덕분에 커뮤니티에는 매우 안정적이고 매너 넘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습니다. 친절하고 따뜻한 분위기는 사람들로 하여금 닫힌 마음을 쉽게 열 수 있는 마력을 풍겼고, 사람들은 그 어디에서도 쉽게 얘기하지 못할 개인사와 상처, 고민들을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커뮤니티의 구성원들은 이에 진정성 있는 위로와 격려로 화답했습니다. 마치 천국이 도래한 듯한 분위기가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 생경한 풍경에 닭살 돋아 하며 당황해했고 또 어떤 이들은 마치 천사라도 만났듯 몰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칼이 사용하기에 따라서 무기가 되어 사람을 죽일 수도 수술용 메스가 되어 사람을 살릴 수도 있는 것처럼, 이 마법 커뮤니티의 페르소나는 사람의 마음을 열게 하는 안전장치로 사용될 수도 위선과 가식의 신세계를 여는 악마의 가면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모두가 고래의 꿈을 꾸는 이 새로운 커뮤니티에서 페르소나가 어떤 방향으로 사용될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모두의 마음에 진심과 의심이 마구 교차하고 있었습니다.  S 그런데 이 시스템에서 페르소나를 유지시키는 동력은 결국 보상에 있는 것입니다. 다른 곳에서라면 막말을 내뱉었을 리플에도 정중하고 매너 있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결국 평판과 보상에 그것이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모든 힘과 질서는 보상시스템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스팀잇은 그 보상시스템에 대한 구성원의 합의가 전제된 채로 시작된 플랫폼이 아니었습니다. 보상의 시스템은 매우 단순합니다. ‘좋아요’를 많이 받은, 그러니까 ‘보팅’을 많이 받은 콘텐츠는 더 많은 보상을 받아 가게 되고, 그 콘텐츠에 ‘좋아요’를 누른 소비자도 그 보상을 함께 나누어 가져가는 방식입니다. 모두가 수긍할 만한 콘텐츠의 가치에 따라 (그것이 존재하는지, 어떻게 나눌 수 있는지 쉽게 정할 수는 없지만) 보상이 이루어지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겁니다. 그러나 이 시스템이 가진 혁신적인(?) 구조 탓에 사람들은 내가 좋아하거나, 또는 많은 이들에게 알려질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콘텐츠보다, 일단 어쨌든 ‘좋아요’를 많이 받는 콘텐츠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까지는 큰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베스트셀러가 명작이 아니고 명작이라고 반드시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대중의 선택과 명작의 기준은 얼마든지 유리될 수 있고, 어떤 가치가 더 우월한지는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일입니다.  S 문제는 콘텐츠 가치의 차이가 아니라 자본의 규모에 따라 보상이 달라진다는 데 있었습니다. 이 시스템은 보상을 ‘좋아요’ 개수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보유하고 있는 시스템의 코인량, 그러니까 자본의 크기에 따라 차등해서 계산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100명에게서 ‘좋아요’를 받아도 그것이 자본이 없는 이들의 ‘좋아요’라면 보상이 형편없이 작고, 2명에게서 ‘좋아요’를 받아도 그것이 많은 코인을 보유한 이들의 것이라면 보상이 턱없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음치가 분명한 고래가 부른 노래가 상금을 거의 독차지 하는 형국이 벌어진 것입니다. (음치가 분명합니다. 심지어 점 하나를 찍은 포스팅일지라도 엄청난 보상을 가져갈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자본의 논리에 따라 많은 자본을 투자한 이가 많은 보상을 가져가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겁니다. 그러나 콘텐츠 플랫폼에서 핵심 상품인 콘텐츠가 그 콘텐츠 자체로 평가받지 못하고, 자본의 규모에 따라 보상이 달라지는 양태에 커뮤니티가 혼란에 빠져버린 것입니다.  S 이 문제에 대해 개발을 책임지고 있는 재단은 별다른 장치를 마련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DPoS(위임지분증명) 방식으로 운영되는, 즉 선출된 증인들에 의해 정책이 결정되는 스팀잇의 의사결정 구조를 따르자면 결국 유저들이 대표자들을 통해 직접 문제를 개선하고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이 커뮤니티를 자신의 공동체로 자신의 소속으로 여길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신생 커뮤니티는 수많은 장점과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개별주체에게 주인의식을 심어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단순 소비자로서의 독자 유저 뿐만 아니라 기대를 걸고 진입한 콘텐츠 생산자와 자본 투자자 모두 이 새로운 실험이 잘되기를 바라지만, 여차하면 보따리 싸서 떠날 준비를 한 채로 엉거주춤을 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S 수많은 암호화폐들이 등장했다 사라지는 이 춘추전국시대에 화폐로서 기능하기 위한 최우선 조건은 자본을 유치하는 것일 겁니다. 그러므로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는 재단은 투자자의 수익증대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이 점 하나를 찍고 막대한 보상을 가져간다 해도 일단 자본의 유입이 늘어나는 게 중요할 테니까요. 그러나 생각의 가치를 보상하겠다며 콘텐츠 플랫폼을 선언하고 나선 마당에 창작자와 큐레이터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투자자는 조금만 수익성이 떨어져도 썰물처럼 떠나가지만, 창작자들은 자신의 콘텐츠들이 쌓여있는 공간을 쉽게 떠나갈 수 없습니다. 장기적으로는 결국 양질의 콘텐츠가 이 플랫폼의 가치를 보장해 줄 것이기에 그들에 대한 보상 역시 포기할 수 없는 요소인 것입니다. 게다가 더 중요한 것은 소비자입니다. 읽어주고 보아주고 큐레이션 해 줄 소비자들을 유입시키고 머물게 하는 것이 마케팅의 모든 것일 텐데, 그들이 양질의 콘텐츠를 경험하면서 보상까지 얻어 갈 수 있다면 단순히 접속자 수, 페이지뷰를 보장하는 역할을 넘어 소비자들 자신이 투자자와 창작자로 전환될 수 있는 미래 기회까지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역사상 최초로 콘텐츠 소비 행위에 직접적 보상을 지급하는 이 실험은, 새롭고 막강한 콘텐츠 포털의 출현을 예고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걸 모두가 느끼고 있었습니다.  S 그러나 모두가 흥분하고 모두의 열정이 쏟아지기 시작하자 전쟁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일명 ‘고래 전쟁’. 세 마리 토끼를 쫓으려다 보니 입장을 가질 수 없게 된 현실적 운영 주체인 재단이 침묵하는 가운데, 투자자와 창작자 그리고 소비자가 저마다의 입장과 견해를 내세우며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특히 자신의 글에 자신이 보팅하는 일명 ‘셀봇’과 몇몇 투자자들이 서로 보팅을 주고 받는 ‘보팅풀’ 등의 행위를 불공정 행위로 지목하며 공격하기 시작한 창작자 진영과 투자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데 누가 투자를 지속할 수 있겠느냐, 결국 창작자들이 받아 가는 보상도 투자자들의 자본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냐며 반격하는 투자자 진영의 대립이 극심하게 이어졌습니다. 창작자들은 황금알을 낳아 줄 거위의 배를 자르지 말라며 투자자들을 설득, 협박, 공격하고 투자자들은 알이 먼저냐? 거위가 먼저냐? 만족할 만한 보상 없이 어떤 거위가 이곳에 황금알을 낳겠느냐며 반격하였습니다. 입장은 대립할수록 팽팽해졌고 합의점은 좀처럼 찾아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고래가 되고 싶고, 고래가 되기 위한 방식을 갑론을박하는 가운데 고래 전쟁은 점점 극단으로 치달아갔습니다. 그리고 새로 진입하는 뉴비들에 의해 잠잠해지다 다시 반복되는 무한루프를 타고 있었습니다.  S 모두가 피곤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2장_ 고래 전쟁 

 

 S  제1장  인류의 무의식을 채굴하다
 S  제2장  고래 전쟁  
 S  제3장  총수님을 찾습니다 
 S  제4장  지구행진 그리고 위즈덤 레이스